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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종교의 만남, 이미 시작됐다

인공지능(AI)이 미래의 테크놀러지로 떠오르면서 종교와 접목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종교와 AI는 아직 논란의 대상이지만 한편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온라인 예배를 경험한 터라 코로나19를 겪지 않았을 때보다 거부감이 줄었으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스위스에서는 지난해 가을에 방문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AI 예수 고해소를 설치해 많은 관심과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AI 예수는 스위스 루체른대학이 현대성과 종교의 새로운 결합을 주제로 기획한 '기계 속의 신(Deus in Machina)'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됐다.     AI 예수는 신학적 텍스트를 기반으로 설계된 AI 프로그램이 스크린에 예수의 홀로그램을 만드는 형태로 구현됐고 방문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능을 갖추었다. 방문자들은 익명성이 보장돼 개인 정보 노출을 막도록 했다. 이와 함께 방문자들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AI 예수가 고해성사를 대체하려는 것은 아니며 대화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를 위험성은 감수해야 한다는 고지를 받았다. 논란을 우려한 안전장치에도 언론에서는 이 실험이 AI가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위험성을 제기했다.   프로젝트 명칭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연극에서 등장인물이 해결 못 하는 문제를 신이 해결하는 플롯 장치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에서 따온 것이다. 이 플롯 장치가 문제 해결을 위한 설정에 불과하지만 신적인 존재를 연상시킨다는 점과 첨단기술이 종교적 경험에 미칠 영향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AI와 고해성사의 간극     당시 일부 언론은 AI 예수가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고백을 들었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보도는 그 자체로 AI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 프로젝트는 고해성사의 본질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종교적 의식을 어떻게 보완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AI가 종교적 의식에 끼칠 잠재적 우려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고해소는 가톨릭 사제가 신자들의 죄를 고백받고 용서를 선언하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이는 성경에서 사도들이 죄를 용서할 권한을 부여받은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죄의 고백과 용서의 행위는 인간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진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AI가 이를 대체할 수 있느냐는 의문은 당연하다.   ▶AI는 영적 교감 못해   초기 교회는 중대한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참회할 것을 권장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고백은 비공개로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중세 초기에는 고해성사가 더욱 의례화되었고 사제가 신자들의 죄를 듣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는 역할을 맡았다. 16세기 트렌트 공의회 이후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고해소가 도입되었고 이후 수 세기 동안 가톨릭교회의 고백에 핵심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고해성사는 이전보다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AI 예수 프로젝트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시도다. 고해성사의 역할과 현대 기술의 접점을 실험한 것이다.     인간 사제의 역할을 AI가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은 없다. AI가 인간 고유의 감정과 영적 교감을 포함하는 죄의 고백과 용서의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재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적 혁신이 전통적인 종교의 새로운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AI가 복잡한 신학적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거나 교리를 더욱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교 가능성 우려     AI와 종교의 결합은 단순히 기존 종교의식을 보완하는 보조적인 차원이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종교를 낳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제기했다. 매니토바 대학교의 닐 맥아더 교수는 AI를 중심으로 전혀 다른 종파가 조만간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최신 AI 기반 챗봇은 대규모 언어 모델로 훈련되어 놀라운 지능과 창의력을 보인다. 이런 모습을 초월적 존재와 유사한 것으로 느끼는 이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AI가 소수의 군중에서라도 새로운 종교로 등장할 수 있는 특징으로는 이런 것들이 꼽힌다.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과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   -시와 음악 등 예술에서 창조적 능력을 즉각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신체적 고통과 배고픔, 욕망 등 인간적 제약이 없다.   -언제든 일상의 지침과 조언을 내놓을 수 있다.   이미 AI가 자신을 초월적 존재로 주장하거나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강한 감정적 반응을 유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 사례 중에는 AI 챗봇이 사용자를 설득해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하려 했던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에는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람들에게 영적 지도자로 인식될 위험이 깔려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AI 예수는 단순히 정보 제공과 대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됐지만 더 복잡한 역할을 맡을 기술적 역량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테크놀러지의 발전 속도로 보면 AI가 성경 해석과 기도 지원, 심리적 상담 같은 영역으로 확대되면 우려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규제 논의 필요   맥아더 교수는 AI 기반 종교가 등장한다면 기존의 종교 구조와 다른 형태를 가질 것으로 전망했다. 위계적인 구조의 약화와 개방적 성격 확대, 직접적 소통이 대표적 특성이다.   이런 특성은 다양한 교리를 만들 수 있고 심각한 위험으로 부상할 수 있다. AI가 사용자들에게 파괴적이거나 위험한 행동을 지시할 수도 있다. 또 AI 설계자가 추종자의 민감한 데이터를 악용하거나 추종자를 조작할 우려도 있다. 다양한 AI 교리가 갈등을 일으켜 종파 간 혼란이나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맥아더 교수는 AI 숭배가 낳을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경고하고 그 가능성에 한발 앞서 대비하고 규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와 기술의 공존 가능성   인간의 몸과 감정, 초월적 희망이 없고 영적 교감이 없는 AI가 종교적 의식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종교적 전통을 지키면서 AI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시도를 어디까지 포용하느냐는 앞으로 종교계의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AI와 종교의 결합이 실험 단계에 들어선 지금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희생하지 않는 주의 깊은 접근이 필요해졌다. 한편으로는 AI의 등장은 종교와 신앙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안유회 객원기자종교 시작 종교적 의식 종교적 경험 프로젝트 명칭

2025-01-06

[김형석의 100년 산책] 종교의 위기, 현대인은 어떤 신앙을 원하는가

반세기 전이기는 하지만 두 차례 인도를 방문하였다. 첫 느낌이 후진국가라는 인상이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베풀어야 하는 기본교육, 절대빈곤 극복, 의료혜택 보급을 위한 시설, 모두가 구비되지 못했다. 식구가 많은 가정의 빈곤한 모습을 대도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회학자들은 인도가 미국만한 선진국가가 되는 데는 180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인도인도 첫째 목표는 파키스탄보다 잘사는 것이고, 다음 희망은 중국을 능가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한국도 개발도상국 중간단계였으니까.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3000년 가까운 세월을 종교적 세계관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4대문화권 모두 원시종교를 비롯한 종교문화에서 출발했다. 인도 유럽 중동지역이 그랬다. 중국의 문화도 상고시대에는 마찬가지였다. 그 기간은 길었다. 힌두교와 불교,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 등이 중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문학적 세계관시대를 거쳤다. 철학과 역사 문학사상의 과정을 밟았다. 그에 뒤따르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기계공학의 시대까지 창출해 냈다.    반세기 전 두 차례 인도 방문   그런데 인도는 그 어느 과정도 밟지 못했다. 인도사상을 산출시킨 우파니샤드 철학은 종교사상으로 흡수되었고 철학, 역사, 문학적인 정신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영국학자들이 인도에는 역사의식이 없었고 과학은 배척받아 왔다고 평했을 정도다. 그 대신 많은 종교를 배출했다. 종교적 세계관과 인생관이 사상·정신계의 주류를 형성해 왔다.   인도에서 가장 문화수준이 높은 뭄바이에 갔을 때였다. 관광안내를 받아 배화교 장례절차가 벌어지는 곳으로 갔다. 우거진 숲속에 설치된 장례시설이 있고, 사람이 죽으면 물과 땅을 더럽히면 안 된다고 해 시신을 시설 대에 안치한다. 독수리 까마귀들이 그 시신을 뜯어 먹고 유골은 밑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래야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이다.   뭄바이에는 마하트마 간디가 18년 동안 거주한 2층 건물이 보존되어 있다. 지극히 검소한 공간이다. 2층에는 간디가 직접 천을 짰던 물레가 있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대학 경제학과 출신의 안내원이 간디는 기계문명을 기피했기 때문에 손수 만든 천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영국의 경제적 진출을 막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느냐고 물으니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수도 뉴델리에 가면 간디의 석조무덤이 있는데 그 돌들 모두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갈아 만들었다는 설명을 추가하였다. 수많은 종교시설이 있고 어디에 가든지 종교적 의식과 모습을 보게 된다. 소떼가 도시 거리를 다녀도 제재하지 않았다.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내가 인도를 다녀온 얼마 후에 종교폭동이 일어났다. 이슬람 성전 안에 안치되어 있던 마호메트의 머리카락이 없어졌는데 힌두교도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사건이 확대되면서 두 종교인 간의 싸움이 전쟁 상태로 확대되었다. 사상자 600여 명이 생겼다는 보도였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거기에 마호메트의 머리카락이 보존되었을 리도 없고 그것 때문에 폭동이 발생했다면 그런 종교는 없는 편만 못하다. 중동지역을 다녀보았을 때는 더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다. 종교의 영향이 사회문제를 넘어 국가와 국제적 문제까지 좌우하고 있었다. 종교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남존여비 전통과 일부다처제는 코란경을 믿는 동안에는 지속될 것이다.   사상가들은 공산주의는 100년으로 끝났으나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분규는 200~300년 계속될 것으로 본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현대인도 같은 종교적 신앙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된다. 우리가 믿으며 공존하고 있는 불교와 기독교는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기독교의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 종교를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그 신앙이 인간의 가치 있는 삶을 위한 과정과 수단이 아니고, 인생의 목적인 듯이 잘못 생각하게 된다. 기독교 정신이 모든 철학이나 사상보다 인류에 희망이 되며 역사의 긍정적 가치관이 되어야 한다. 왜 현대인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가. 기독교의 정신이 휴머니즘을 탄생시켰고 인도주의 정신을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 사유와 가치는 물론 양심과 윤리적 가치를 수용하고도 더 높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성적 판단이나 양심적 기준에 미달되는 종교라면 현대인들은 거부해야 하고 인생의 긍정적 의미를 종교 이외의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의 한계 넘는 구원의 약속   과학정신도 그렇다. 자연과학의 원리와 과제는 종교적 영역과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이미 법칙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기반과 목표는 정신적 질서와 가치를 배제할 수 없으므로 종교적 진리와 무관할 수 없다.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의 가치에는 공통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학은 삶의 가치를 위한 것이다. 그런 사회과학적 원리와 이념도 종교가 수용하면서 새로운 가치창조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그런 책임을 역사적으로 감당해 왔고 앞으로도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인다. 기독교회가 기독교의 전부이고, 교회가 만든 교리가 인류역사의 진리와 일치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정신과 사상적 사명을 포기하거나 무관한 신앙이 된다면 기독교는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교회의 수가 많고 적은 것은 문제 밖이다. 기독교가 인류의 희망이며 역사의 생명력이 될 수 있는가 함이 문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교리보다 진리이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구원하며 인류가 만들어 놓은 비참과 역사적 절망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존재하며 주어지는 구원의 약속을 바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참된 신앙의 생명력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현대인 신앙 종교적 세계관 이슬람교 기독교 종교적 의식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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